[경제학이란 무엇?] #1_국부론 | 애덤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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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Study]/경제 Column

[경제학이란 무엇?] #1_국부론 | 애덤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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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애덤 스미스 1723 ~ 1790

영국 사회과학자이자 경제학자. 고전파 경제학의 아버지. 글래스고 대학 교수, 총장 등을 역임.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엄청난 통찰력으로 경제사상의 바탕을 만들어냈다. 

 

1. 18세기까지 경제학은 없었다? 

지금은 고전파 경제학의 시조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지만 당시 그는 경제학작 아닌 철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왜일까? 그 시대에는 아직 경제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학문이란 그 분야의 발전과 더불어 번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의 법이라곤 마을의 관습밖에 없던 시절에 법학이 발전 했을 리가 없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18세기 사람이다. 그렇게 최근까지 경제가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인류가 탄생하고 18세기까지 경제는 아주 조금밖에 발전하지 못했다. 그것은 경제를 정치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18세기까지 세계 어디에서도 정치적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놀라울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특권계급에 의해 지배받았다. 왕에게 혹은 교회에 아니면 무사나 영주에게 민중은 자유를 억압받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2명 이상이 모이면 반드시 사회가 형성된다. 그리고 사회가 형성되면 이번에는 지도자가 나타난다. 지도자가 나타나면 지배와 종속이 생겨나고, 최종적으로 지배자는 자신의 지위와 생활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 국가와 비슷한 체제를 취한다. 이것이 바로 봉건제다.

봉건제는 농민을 땅에 묶어두고 노동과 공물을 수취하는 시스템이다. 체제만 확립되면 특권계급은 일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체제에서는 경제가 발전하지 않는다. 영주는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농민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새로운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봉건제에서는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경제학이 발전한다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바로 중상주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상주의란 절대군주가 상업과 무역을 보호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수취하는 시스템이다. 국왕이 특정 상인의 후원자가 됨으로써 상인은 무역으로 돈을 벌고 국왕이 특정 상인의 후원자가 됨으로써 상인은 무역으로 돈을 벌고 국왕은 이익을 얻는다. 이때 후원 받은 곳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설립한 동인도회사다. 동인도회사는 동양 무역을 독점하는 회사로 처음에는 왕과 결탁하고, 왕이 혁명으로 쓰러진 이후에는 주주와 결탁 그리고 왕과 주주들에게 외면당한 다음에는 식민지의 현지 권력자와 함께 활약했다. 

절대왕정이 번영했던 16~18세기 유럽의 절대군주들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중상주의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북 아메리카까지 세계의 영역은 착실하게 확장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역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각각 독자적인 동인도 회사에 무역 특허권을 주었고, 이로 인해 무역과 상업이 번성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세계 경제는 봉건제에서 한 꺼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 발전 여건이 완벽히 조성되지는 못했다. 중상주의 덕분에 상품경제는 발달했지만 정작 정치적 자유가 없었다. 이 시점에서 자유로운 것은 왕과 동인도회사뿐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민중들은 돈을 벌지 못했다.

이후 시민혁명으로 절대왕정이 무너졌다. 드디어 자유를 얻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열을 올렸고 이는 산업혁명과 경제학 발전으로 이어졌다.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는 바로 이런 시대다. 즉, 전문 경제학자가 없었던 시대였다. 애덤 스미스보다 조금 앞서 <경제표>를 쓴 프랑스 중농주의자 케네 역시 경제학자가 아닌 의사였다. 애덤 스미스는 글래스고대학의 철학 교수였지만 퇴임 후 경제학의 창시라고 할 수 있는 <국부론>을 썼다. 덧붙여서 그는 집필 전에 프랑스에서 케네와 만났었다. 그때 케네에게 재생산이나 자본 축적의 시점을 배웠으며, 그 내용은 책으로 이어졌다. 

 

프랑수아 케네 ( 프랑스어:  François Quesnay ,  1694년   6월 4일  ~  1774년   12월 16일 )는  프랑스 의  경제학자 이자  의사/ 그의 사상은 "농업은 국부의 원천"(the products of agriculture, which is the only source of wealth)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2. 애덤 스미스 덕분에 경제학이 발전했다! 

<국부론>은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책에는 엄청난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고전파 경제학뿐만 아니라, 이후 등장하는 여러 경제사상의 바탕이 되는 아이디어가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경제사상이라고 하면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정도다. 그가 참고할 수 있었던 사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국부론>에는 분업이론, 이기심의 개념, 균등가격의 개념, 국민소득의 개념, 노동가치설, 자유방임주의, 값싼 정부 같은 내용이 가득하다. 애덤 스미스는 이 모든 개념들을 자신의 경제적 직관으로 발견했다. 게다가 몇 번이고 반복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깔끔하게 설명한다. 애덤 스미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은 책 속에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엄청난 천재다. 철학을 전공한 교수가 자본주의를 이렇게 깨끗하게 설명할 수 있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직관에 의존한 탓인지 이 책에는 빈틈이 많다. 모순과 혼동이 꽤 있어서 몇 군데 잘못된 내용도 있다. 천재적 직관과 빈틈이 많은 이론은 학자를 자극한다. 뒤에 소개할 리카도를 비롯한 많은 경제학자들이 빈틈을 찾아내 애덤 스미스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탈탈 털었다. 그 공격과 수정이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경제학을 다방면으로 발전시켰다. 이 정도면 애덤 스미스가 너덜너덜해진 보람이 있다. 여기에서는 빈틈보다는 그의 천재적인 이론을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3.분업, 경제 발전의 중요 키워드 

<국부론>은 분업의 훌륭함을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농업과 달리 공업은 분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핀(재봉용 시침바늘)을 제조할 때 한 사람이 만들려고 한다면 하루에 한 개도 만들 수 없다. 한 명이 핀을 만들려면 우선 아침 일찍 산에 올라 철광석을 캐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불을 피워 녹인 다음, 형태를 만들고 다듬는다. 게다가 만약 핀 한 개당 100만 원에 필 수 있다면 의욕이 생기겠지만 완성된 핀 한 개의 가격은 100원보다 저렴하다. 이것은 형벌이다. 아니, 형벌이라도 피하고 싶다. 하지만 이 아찔한 공정은 분업을 통해 작업 효율이 크게 좋아진다. 스미스가 실제로 본 핀 제조소에서는 10명이 하루 4만 8,000개를 만들었다. 하루 기준, 한 사람이 4,800개까지 만들 수 있다. 노동자 한 명당 생산량을 '노동생산성'이라고 하는데 분업은 이 노동생산성을 굉장히 높여준다. 

 

그러나 농업에서의 분업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논밭을 가는 시기, 열매를 맺는 시기, 파종을 하는 시기, 수확하는 시기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동시에 진행해 가각 한 단계의 작업에 집중하는 분업에는 맞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은 토지 개량과 도구의 발전으로 다소 효율을 높일 수 있겠지만 공업처럼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는 없다. 이런 이유로 농업 국가보다 공업 국가에서 생산량이 증가하고 사회가 발전한다. 

덧붙여 분업은 타인과의 협동이지만 스미스는 상대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이기심에 호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힘듭니다.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나와 함께 분업하면 나도 당신도 지금보다 돈을 더 벌 수 있어요"라는 말이 보다 확실하게 사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4. 노동가치설을 이해하면 시장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물건을 교환하는 습성이 있다. 고도의 사회성이 존재한다. 그렇기 떄문에 분업이 가능하며 그 후 교섭과 매매도 성립한다. 서로의 능력 차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분업은 시장이 크면 클수록 세분화되며 세분화된 분업은 시장을 더욱 크게 만든다. 

분업이 진행되어 사회가 커지면 교환을 하는 상업사회가 된다. 상업사회가 되면 물건의 가치를 측정하는 방법(척도)과 교환 수단이 필요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교환가치를 말한다. 가치는 두 종류로 나뉜다. 물처럼 실생활에 피룡하지만 교환하지 않느 가치를 사용가치, 반대로 다이아몬드처럼 실생활에서 도움이 되지않지만 많은 물건과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교환가치라고 한다. 그렇다면 교환가치의 측정방법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교환가치의 측정방법이라고 하면 누구든 화폐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화폐로 진짜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통화로서 사용되는 금이나 은은 가치가 변동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물건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가격은 하락한다. 만일 당신의 이가 모두 금니라면 시세보다 저렴한 금니가 시장에 나와도 사지 않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척도로는 진정한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측정해야 좋을까?

 

스미스의 대답은 '노동'이다. 노동이야말로 상품의 교환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노동가치설'이다. 

예를 들어, 가위 한 개는 '5명이 1시간 동안 만드는 것'이고, 펜 한 자루도 '5명이 1시간 동안 만드는 것'이라고 하면 이 두 가지를 교환하더라도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다. 실제로는 이런 물건 교환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통화라는 교환수단을 사용하는데, 통화는 가치가 변동한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어제는 가위가 은화 1닢이었는데, 새로운 은광이 발견되어 은화 가치가 떨어지면 오늘은 은화 2닢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노동가치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 가치를 구현하는 은의 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물건의 가치는 변해도 노동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시간과 장소가 바뀌어도 가위 한 개를 만드는 수고와 노동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실제 교환에는 통화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 교환의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는 것은 노동이다.

 

단, 노동에는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이 있다. 전자는 제조업 등을 말하는 것으로 그 이익을 자분가가 축적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그에 비해 후자는 어떤 장소에서 소비되는 서비스의 형태(가사도우미의 일, 의사, 법률가, 예술가, 가수, 댄서 등)로 자본가의 재생산에는 공헌하지 않는다.

 

스미스는 나라의 부를 늘리는 방법으로 당연히 생산적 노동을 중요시했을 것 같지만 뜻밖에도 절약을 가장 추천했다. 부자가 비생산적인 노동에 사용하는 돈을 '낭비'라고 보고, 그것을 절약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자본은 절약을 통해 증가하고 낭비와 무모한 경엥에 의해 감소한다", "낭비하는 사람은 사회의 적이며, 검소한 사람은 사회의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노동가치설을 다시 살펴보자. 상품의 교환가치를 노동으로 측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상품 가격은 노동 가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만약 자본도 토지도 사용하지 않는 수렵사회라면 그리고 사냥하는 수고마저 같다면 '비버 한 마리와 사슴 두 마리의 교환'도 가능하지만 문명국가에서는 좀 더 다양한 생산수단이 사용된다.

 

문명국가의 상품 생산은 노동자의 노동과 자본가의 자본(공장, 도구, 기계), 지주의 토지, 이 세 가지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간단히 말해, 실제 상품 가격은 자금, 이익, 지대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으로 형성된 가격이 '자연가격'이며 이 세 가지가 모두 수입의 원천이다. 

 

자연가격이라는 말을 들어면, '아, 시장가격이구나'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스미스는 이 두 가지를 구별했다. 자연가격은 자금, 이익, 지대를 통해 형성된 가장 합리적인 가격이다. 반면 시장가격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양과 구매자(유효수요자)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스미스는 자연가격을 중심으로 시장가격은 변동하며 가장 합리적인 자연가격으로 회귀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시장의 움직임이다. 덧붙여 시장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도 사회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한다. 구매자는 가급적 낮은 가격을, 반대로 판매자는 가급적 높은 가격을 고수하려 한다. 그럼에도 상품의 공급량은 자연스럽게 수요에 맞춰져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 그렇다. 그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끈 결과다. 참고로 스미스는 앞서 말한 자유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를 '독점'이라 지적하고 동인도회사의 독점을 후원하는 중상주의를 비판했다.

5. 필요한 것은 무역의 자유와 작은 정부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부는 돈과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정부는 중상주의 정책을 시행해왔다. 중상주의는 금은의 채집과 유출을 금지하는 중금주의에서 수출로 돈을 버는 무역차액설로 발전헀다. 어느 쪽이는 금은의 축적과 무역수지 흑자를 위해 정부가 행하는 보호정책이지만 이런 통제나 특권이 넘치는 무역은 스미스가 보기에는 둘 다 가치 없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역의 자유다. 무역의 자유만 있다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돈이나 필요한 것들이 알아서 손에 들어온다. 바로 자유방임이다. 정부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안흔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공급과 유효수요가 만나는 시장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두는 일이다. 

시장은 완전하지 않다. 정부도 최소한의 개입은 해야 한다. 그래서 스미스는 국방, 사법, 교육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시장 자율에 맡기기에는 불안하기 때문에 정부가 공비를 지출하여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한다. 이런 정부를 지금은 작은 정부, 값싼 정부라고 부른다.

 

<국부론>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자본의 분류와 주식회사의 발단, 지폐의 시초 등이 몹시 자세하게 쓰여 있다. 천천히 공들여 읽을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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