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회계사에게 창의성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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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회계사에게 창의성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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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처 

|강경모| 2005년 고려대 경영학과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KPMG 삼정회계법인, 삼정데이터서비스를 거쳐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서 회계사 겸 컨설턴트로 재직. IT 관련 자격 시험뿐 아니라 미국 뉴욕주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해 회계사로서 전문 영역을 넓혀 가고 있으며, 경찰청 및 인천국제공항에서 영어통역 자원봉사요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1. 대형회계법인에 다닌다는 것

 "딜로이트에서 일하신다고요? 머리가 좋으신가 봐요! (Deloitte? You must be smart!) " 
  2010년 한 지인의 소개로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외국인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과 어울리면서 나를 딜로이트에서 근무하는 회계사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그들은 회계사라는 타이틀에 반응을 보이는 한국 사람들과 달리 내가 근무하는 딜로이트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어쩜 그렇게 입사하기 힘든 회사에서 근무하냐."며 나에게 스마트 가이라고 칭찬했다. 처음 보는 외국인들에게도 인정받는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에 새삼 으쓱했다.
  돌아보면, 경영학도로서 자격증 하나 정도는 가지고 졸업하자는 생각으로 공인회계사 시험에 도전했다. 그리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지 어느덧 7년이 넘었다. 대형 회계법인에서 처음 회계사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소위 회계법인 업계에서 '핫 시즌'이라 불리는 1월부터 3월까지의 살인적인 업무도 여러 번 경험했고, 내 또래의 다른 사회인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을 업무 스트레스도 받아 왔지만,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회계사라는 직업이 나의 천직이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 
  '여의도에서 가장 비싼 건물로 출퇴근을 할 수 있다.', '높은 연봉을 받고 남들에게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다' 등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의 이점은 많이 있지만, 내가 회계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회사와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회계법인에는 자기 자리가 없다?

  다양한 고객사에 감사와 컨설팅 등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 특성상 회계사들은 여러 회사를 찾아다니며 근무를 한다. 그래서 회계법인 내에는 파트너들 말고는 고정된 자기 자리를 갖고 있는 회계사가 거의 없다.
  다양한 업종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는 대형 회계법인에서 일하면 각자의 스케쥴에 따라 여러 고객사들에 감사,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그 업종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나의 경우 은행업, 증권업, 캐피탈 등 금융사들에서 업무를 주로 하면서 그 사이사이 제조업, 건설업, 방송통신업 등 비금융권 고객사를 상대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거래 데이터를 쏟아 내는 은행이나 증권사 업무를 할 때는 엄청나게 방대한 데이터와 몇 달을 씨름하기도 한다. 그나마도 전자화되지 않은 문서를 가지고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금융실사에 투입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문서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여러 번이다.
  제조업체와 업무를 할 때면 금융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일을 하게 된다. 회사 관계자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일이 많다 보니 회사관계자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는 경우도 있고 업무가 끝나면 함께 술자리를 갖는 일도 더러 있따. 일례로 건설업체를 감사할 때에는 감사 팀원을 배정하는 기준이 회계사로서의 역량보다는 주량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건설업계는 술을 많이 마시기로 유명하다. 나 역시 신입 회계사 시절 유명 건설회사 감사팀에 배속된 적이 있는데, 젊은 혈기와 체력을 바탕으로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20잔 연속 마셔 그 감사팀의 고정 멤버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방송사와 신문사, 게임회사 등 정말 다양한 업계의 사람들을 만나며 회계사로서의 업무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 

3. "오늘 돼지를 사러 갑니다." 

  지난 2005년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막 근무를 시작했던 초년생 시절, 신입 회계사에게 주어지는 재고자산 실사입회 업무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재고자산 실사입회는 고객사의 재무제표상 재고자산이 실제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업무로, 고객사의 업종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재고자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반도체 회로기관, LED전구, 전선 코일에서부터 초고층 빌딩 건설 현장, 한쪽 벽을 가득 메운 현금다발, 산처럼 쌓여 있는 옥수수가루 등 다양한 자산실사를 경험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재고자산은 ···. 
  금융업 감사 업무를 주로 하던 어느 날이었다. 느닷없이 하달된 재고실사 업무에, 어떤 종류의 재고인지,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같이 실사를 나가기로 한 선배 회계사에게 물었지만 어쩐 일인지 답변을 피했다. 그는, 다만, 얼룩덜룩한 전기 조서를 건네주며 작은 당부를 몇 가지 했다.
  "강경모 회계사, 좋은 옷 대신에 버려도 되는 옷을 입고 오세요. 식사는 하지 않고 오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때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KTX 열차를 타고서야 나는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오늘 우리는 돼지를 세러 갑니다."
  돼지 축사들이 넓게 자리한 농장은 입구에서부터 전해 오는 그 향기가 범상치 않았다. 머릿속에는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농장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재고실사에 착수했다. 귀여운 새끼 돼지들은 재고 리스트상에서 생후 일수에 따라 '재공품', '반제품', '완제품'으로 구분돼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재고 리스트에 기재된 20여 개의 축사 중 3개를 샘플링했다. 아뿔사, 운이 없었던 건지, 그중 하나가 이 농장에서 돼지가 제일 많은 축사였다.
  흰 가운과 장화, 마스크를 착용하고 축사 안으로 들어서자 뼈에 사무치는 듯한 강력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재고를 세기 시작했지만, 이 '살아 있는 재고'들은 감사인의 마음을 눈곱만치도 알아주지 않았다. 인기척이 나자 밥을 주러 온 줄 알고 꿀꿀거리며 나에게 몰려들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돼지들 사이에서 같은 녀석을 중복으로 세기도 하며 다시 세기를 몇 차례나 되풀이 했는지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돼지 1700마리의 재고실사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사무실에 돌아와서 다시 맞춰 보니 돼지 4마리가 비었다.
  "두 시간 전에 셌는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축사장이 애절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다시 돼지우리로 들어가야 한다며 작업복과 장화를  챙기던 축사장의 모습은 흡사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도저히 다시 들어갈 수가 없었던 나는 축사장에게 회계사의 '중요성의 원칙'에 대해 설명했다. "회계사의 전문가적 판단 기준에 의거해 그 차이가 중요하지 않은 경우 적정하다고 간주할 수 있다." 며 한참을 설득한 끝에 축사에 다시 들어가야 할 뻔했던 위기를 겨우 모면했다. 위기 아닌 위기였지만, 돌이켜 보면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숭고한 직업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4. "1 더하기 1은 얼마입니까?" 

  "1 + 1 은 얼마입니까?" 라는 질문에 수학도가 수학적인 증명을 시도하고 철학박사가 철학적인 답을 찾는 동안 회계사는 "얼마를 원하십니까?" 라고 되묻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회계사가 회계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기업의 실적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집어낸 농담이다. 실제로 회계법인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숫자를 분석하고 가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컨설팅이 바로 그러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으로 회계 시스템 변환 과정을 끝내서 회계법인들의 매출 특수가 끝난 요즘, 회계법인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고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회계법인의 컨설팅 업무 진출이다. 대형 회계법인은 일찍부터 전문 컨설팅 회사를 따로 두고는 회계법인의 감사 서비스와는 별개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컨설팅 업무에서도 회계 마인드를 요구하는 일이 많아서 회계법인이 직접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전통적인 컨설팅 서비스는 전략(Strategy), 운영(Operation), IT(Information Technology)로 영역을 나누어 개별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으나, 최근에는 전략과 운영, 운영과 IT, 또는 세 분야를 종합적으로 융합해 서비스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계법인도 운영 컨설팅을 중심으로 전략, IT 컨설팅으로도 영역을 넓혀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회계감사와 컨설팅 업무의 가장 큰 차이는 의사 결정 여부다. 회계감사는 회계기준을 바탕으로 원칙적인 회계 처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데 비해 컨설팅은 프로젝트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의사 결정을 해 나가는 역할까지를 포함한다. 물론 의사 결정의 주체는 고객사이다. 컨설턴트의 역할은 고객사가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서로의 의견이 같을 수 없기에 충분한 의사소통은 필수이며,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확실한 논리를 폄으로써 고객을 설득하기도 하는데 때로는 의견 충돌이 격해져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한번은 한 고객사의 정책을 설계해 주는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던 중에 고객사 팀장이 내가 만든 작업 파일의 논리가 잘못되었다며 따지고 들었다. 나 또한 살짝 기분이 상했던지라 그에 대해 강하게 반박을 하면서 상황이 악화됐고, 급기야 서로 언성이 높아져 문서를 집어 던지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상식 밖의 행동에 화가났지만, 그 자리에서 감정적인 대응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생각에 꾹 참았다. 많은 생각과 궁리 끝에 만든 나의 논리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다시 차근차근 설명을 하며 고객사를 이해시켰다. 상당한 시간을 들여 나의 논리가 ㅇ옳음을 고객사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고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되었다.

5. IT 전문 회계사를 향한 한 걸음, 한 걸음 

 졸업과 동시에 회계사로 근무를 시작한 나는 국내 은행과 해외 은행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은행들을 감사하면서 매일 그 방대한 재무 정보를 산출하는 복잡하고도 정확한 시스템에 흥미를 느꼈다. 이를 더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산업기능요원으로서의 길을 선택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IT호스팅회사에서 복무하고 병역을 마쳤다.
  IT 호스팅 회사 근무 시 처음 얼마간은 PHP, SQL 등을 밤새워 공부하며 웹 프로그래밍과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배웠다. IT 시스템 관련 지식이 깊지 않았기 떄문이다. 이런 나의 노력이 회사의 인정을 받아 산업기능요원의 신분으로 여러 중요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의 개발 업무였다. 프로그램의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처리되는 메커니즘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IT 회사에서의 업무 경험은 이후 회계사로서 스스로를 차별화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몇 년 전, 모 저축은행의 재무회계 시스템을 분석하는 업무에 투입되었을 때 일이다. 저축은행의 데이터 규모가 일반 은행 못지않게 상당했기에 나는 원천 데이터를 담고 있는 서버에의 접근 권한을 요청하였다. 엑셀 형태로 자료를 분할, 제공받아 업무를 처리해 왔던 과거의 회계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업무에 접근하는 나를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며, 회계사가 데이터를 다뤄 봐야 얼마나 다룰 수 있겠는가 하는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하지만 IT 회사에서 근무하며 익힌 SQL 등을 활용해 직접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고 분석한 다음 데이터상의 오류들과 임의로 가공된 데이터들을 하나하나 밝혀내고 이에 대한 규명을 요청하자, 회사는 데이터 조작이 있었음을 시인하였다. 나는 그때 이미 저축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고 조만간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2012년에 저축은행 영업 정지 사태가 일어나고 그들의 비리와 전횡(專橫)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진리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재무전문가인 회계사로서 그러한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근간 시스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면 시장에서 그 희소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후 내가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회계 및 세무 강의를 하는 기회를 잡았던 것도, 지인들을 도와 소셜커머스 회사를 만들었던 것도 IT 전문 회계사를 향한 나의 노력이 하나하나 작은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계사의 업무 영역은 다른 분야와의 융합과 접목을 통해 이처럼 확대될 수 있다. 

6. 회계사의 변신은 무죄

  현재 회계사가 한 해에 1000여명 가까이 배출되면서 그 공급이 부족하지 않게 되었지만, 법률과 회계기준 등의 변경으로 업무는 급증하고 고객사로부터 받는 감사 보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회계업계의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누구는 회계사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회계감사를 법정 감사화해서 감사 보수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학의 수요공급법칙에 따르면, 서비스 시장에서 회계사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으므로 회계사 공급은 더 늘어야 한다. 또 회계 정보에 대한 수요자들의 가치 의식을 반영해 책정되는 감사 보수의 현실화는, 수요자들이 회계 정보를 더 가치 있게 받아들이도록 해줘야만 달성이 가능하다. 회계 정보가 사회 공공재로서의 성격도 띠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독 당국의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지만, 회계사 자신이 회계 정보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대형 회계법인에서는 내부 교육을 통해 회계사들 간에 지식을 공유하고, 세미나를 열어 선진 사례를 배우고, 워킹 그룹을 조직해 새로운 트렌트를 미리 예측함으로써 고객 회사들을 선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부의 미래(Recolutionary Wealth)』에서 말한 것처럼,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회계법인은 시속 100마일 이상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대형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한다는 것은 '지식'을 파는 '장사꾼'이 장사를 계쏙하기 위해 끊임없이 '밑천'을 쌓듯 간단없이 공부하여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특정 지역이 아닌 전 세계적인 업무를 주도하며, 서비스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나의 적성에 맞는 업무를 찾아가는 것을 뜻한다. 나 역시 대형 회계법인의 회계사로서 현재 내가 있는 자리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경험,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글로벌 회계싸로서의 경력을 채워 나갈 것이다. "회계사는 숫자로 된 모든 정보를 해석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한 선배 회계사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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