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학 지식 1] 회계가 더 발달한 고대문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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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학 지식 1] 회계가 더 발달한 고대문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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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회계(accounting)는

한 경제주체가 그동안의 성과가 좋았는지, 지금 현재 재무상태는 어떤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익이 많이 나면 성과가 좋은  것으로 간주하며, 돈을 지나치게 많이 빌려서 자원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재무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본다.일목요연하다는 것은 한눈에 볼 수 있게끔 한다는 의미이고, 일련의 과정이란 무수히 많은 거래를 식별(identify)해서 측정(measure)한 다음 보고(report)하는 과정이란 뜻이다. 회계를 한문으로 會計라고 쓴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사람이 모여서(會) 계산(計)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믿을만하다는 뜻이다. 이 회계과정을 통해 산출된 정보를 가지고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의사결정을 더 잘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회계는 정보제공의 기능이 있다.

 

1. 회계는 인류의 문명과 더불어 발달해 왔다.

고대 4대 문명 중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서로 인접해 있었으면서도 각각 독특한 통치방식과 경제활동을 영위하였다. 이 두 문명 중 어느 곳이 더 회계가 발달했을까? 지금의 이라크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달한 곳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생각하면 왠지 이집트가 더 발달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신과 왕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천연적인 혜택으로 외부의 침입이 거의 없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pharaoh)는 최고 통치자로서 '두 땅의 주인(Lord of the Two Lands)'과 '모든 신전의 수장(High Priest of Every Temple)'이라는 칭호를 겸하면서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최고의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즉, 파라오는 모든 토지에 대한 소유권, 법률집행권, 조세의 권리와 함께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신전의 대제사장'으로서 지상에서 스스로 왕과 신의 지위를 겸하였다.

  반면에 메소포타미아는 주위의 산악지대 및 초원지대로부터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서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성쇠가 되풀이되었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의 홍수에서 오는 재해도 많았다. 이에 따라 수메르인은 도시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중심은 도시 수호신을 모신 신전이었다. 신전을 중심으로 정치나 경제 생활이 행해졌으며, 복잡한 신전경제를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문자가 발명되었다. 이것은 국왕의 이름이나 사적의 기록, 또는 종교적 목적에서 고안된 이집트의 신성문자와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왕은 신의 대리인(agent)으로서 신을 모시는 종속관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문명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면 어느 문명에서 회계가 더 발달하였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회계가 더 발달한 문명은 신을 대신하는 파라오 중심의 이집트 문명이 아니라 신을 모시는 왕의 구조를 가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는 그림문자인데 뒤에 설형문자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수메르인은 점토를 굳혀서 만든 서판에 주로 신전에 바치는 물품(곡물, 소, 양, 물고기, 노예 등)을 표시한 문자기호를 새겼다. 사물은 그림으로, 숫자는 짧은 선이나 원의 반복으로, 고유명사는 그림의 본래 의미가 아닌 통상적 발음에 따라 해석하게끔 조합한 그림들로 표시했다. 더욱이 바빌론 왕조시대에 상거래가 이루어진 것을 나타내는 기록은 함무라비법전에서 찾을 수 있다. 상업기록으로는 노예, 우마, 토지, 금전 등을 사고팔고 빌려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2.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회계가 발달하게 된 이유는

  왕이 신의 대리인으로서 한 해의 성과를 요약해서 신전경제를 잘 관리했는지를 보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주인이 위탁한 자원을 제대로 잘 관리했는지를 보고하는 것이 바로 회계의 수탁기능(stewardship)이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왕이 신의 역할을 맡았기 떄문에 한 해의 성과에 대하여 보고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집트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비해 회계가 상대적으로 뒤늦게 발달했다는 것이지 발달이 안 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기원전 3000년경부터 왕실의 재정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이때 기록관은 매우 높은 관직으로 인정되었고, 그의 최고 직무는 세입세출에 관한 국고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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